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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25일 월요일

"하위문화로서의 SM" 번역연재 [3]


SM의 특징

하위문화로서 SM은 행위자 사이의 관계가 매우 다양하다.

관계 시간의 장단으로 살펴볼 때 단기적인 임시 파트너가 있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파트너도 있으며, 심지어는 부부 관계인 커플도 있다. 

또한 몇 십년 동안 관계를 지속하는 경우도 있고, 몇 개월 혹은 며칠 동안의 관계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생활방식에서 볼 때 몇몇 사람들은 SM에서의 역할이 “전천후”혹은 “전업(專業)” 형식을 띠는데, 예를 들면 몇몇 남녀들은 “주인”과 그들의 남녀 “노예”의 관계를 가진다. 

또한 일부는 SM이 “임시적인 일”혹은 “겸직”의 형태를 띠는데, 예를 들면 주말에 함께 모이거나, 휴가 때 함께 즐기는 것 등이다.


SM에서의 역할 측면에서 보면 어떤 경우는 아버지와 아들 관계 같고, 어떤 경우는 주인과 노예 관계 같으며, 어떤 경우는 교사와 학생 관계 같고, 어떤 경우는 간수와 죄수 관계 같으며, 어떤 경우는 장교와 사병 관계 같기도 하다.


역할의 교체에 관해서는 가학과 피학의 주체가 고정불변하는 경우도 있고, 가학과 피학의 주체가 바뀌는 경우도 있다.


성별에 따라 살펴보면 크게 네 가지로 개괄할 수 있다.

첫째는 남성이 가학의 주체가 되고 여성이 피학의 주체가 되는 경우이고, 

둘째는 여성이 가학의 주체가 되고 남성이 피학의 주체가 되는 경우이며, 

셋째는 이른바 멜 vs 멜인 경우이고, 넷째는 팸 vs 팸인 경우이다.


비록 이처럼 SM 관계의 차이가 클지라도, 그들에게는 몇몇 공통적인 특징이 존재한다.
SM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특징은 참여자가 스스로 원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폭력과 SM이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점이다. SM은 애정 영역의 남녀 관계와 같아서 서로의 관심과 존중이 가장 중요하다. 자발과 존중이라는 원칙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발성이다. 

때문에 Polhemus는 “자발성은 SM의 핵심적인 개념이다. 만약 자발적이지 않은 SM이라면 마치 지하 감옥에 갇힌 것과 같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SM의 두 번째 특징은 SM 행위를 하기 전에 쌍방이 사전에 각각의 역할과 행위의 내용 등을 약속하고 정한다는 점이다.

이 원칙은 당사자들이 SM 행위를 하기 전에 솔직담백하고 진솔하게 이야기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관계가 확정되면 쌍방 모두 곧 실행할 구체적인 행위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즉 주체와 객체,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수치의 범위 등에 대해 사전에 잘 안배해야 한다. 
사전에 합의했던 내용과 달라지면 성적 쾌감의 정도와 만족감이 모두 떨어지기 때문이다.


쌍방이 합의해야 할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어떤 내용과 역할을 해야만 쌍방 모두 만족할 것인가?  

2. 쌍방이 감내할 수 있는 한계치는 어디까지인가?

3. Safe Word 사용의 구체적 방법 : SM 행위 과정에서 일방이 “싫어요” 혹은 “멈춰요”라고 했을 때 상대방은 이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또한 재갈이 물려 있는 등 육체적으로 제약을 당하고 있어 어떤 상황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울 경우를 대비하여 사전에 약속하는 신호가 바로 Safe Word이다.  

4. 어떤 성적인 안전조치를 선택할 것인가?

5. 나쁜 기억을 떠 올릴 수 있는 행위나 역할은 어떻게 피할 것인가?

6. 어느 시점에 SM 행위(플)을 끝낼 것인가?


만약 사전에 합의했던 사항을 어기면 SM 행위 과정에서 위험에 처할 수 있으며, 불쾌하거나 놀라게 된다. 때문에 상업적인 SM 행위에서는 가학의 주체가 정신적 기술적 기교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한 Dominatrix는 이렇게 말했다.

“B&D 행위 중에는 그것에 정통한 사람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고객들은 절제를 잃기 쉬우므로 당신이 시종일관 냉정함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SM의 세 번째 특징은 대부분의 경우 피학 성향자가 SM 행위의 내용과 한계를 안배하고 조절해야 한다는 점이다.

피학 성향자는 자신에게 성적 쾌감을 일으키는 고통의 한계를 잘 알기 마련이다. 따라서 SM 행위를 하기 전에 파트너와 충분한 대화를 통해 자신이 감내할 수 있는 고통의 한계를 넘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킨제이가 수집한 자료 중에 SM 행위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그 속에 다음과 같은 경우도 있다.
한 사람이 양초의 촛농을 묶여 있는 상대방의 음경에 떨어뜨렸다. 

단 이 행위를 할 때 그는 아주 세심하게 상대방의 표정을 살폈으며, 상대방이 견디지 못할 때 즉시 중단했다. 이를 관찰하던 한 사람은 “실제로는 피학 성향자가 가학 성향자의 손을 컨트롤한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고 하였다.     
 


SM의 네 번째 특징은 피학 성향자가 가학 성향자보다 많다는 점이다*.

낸시 프라이데이(Nancy Friday)는 3,000명의 남성에 대한 성적 판타지를 조사하면서 이들 남성의 성적 판타지 중에 여성을 지배하려는 욕망은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녀가 조사한 대상 중에 피학 성향 남성과 가학 성향의 남성 비율은 4:1에 달하였다.

그녀의 이러한 조사결과는 매춘업소에 대한 조사결과와 부합하였다. 즉 이들 업소의 고객들 중 비용을 치르고 피학 행위를 한 사람의 수가 가학 행위를 한 사람의 수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다.

남성 또한 여성과 마찬가지로 성적 판타지 속에서는 피학적 역할의 선택을 선호하며, 고통을 쾌락을 상징적인 댓가로 여긴다.  

* 역자주 : 이에 대한 국내의 자료가 전무한 까닭에 우리 나라의 경우는 속단하기 어렵다. 단 한국의 SM을 살펴볼 때 외형적으로는 가학 성향자, 즉 돔의 수가 많은 것 같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또 다른 측면을 볼 수 있다. 

즉 이른바 SM을 일종의 유행이나 유흥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을 표본에서 제외한다면 외국과 비슷한 통계가 나오지 않을까 한다. 


상술한 현상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SM 행위 중에서 가학 성향자는 상대방에게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사항을 파악해야 하고, 각종 행위에 밝아야 하며, 행위의 한계에 주의함으로써 상대방이 다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반면 피학 성향자는 상대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기만 하면 된다.

전통적인 남녀 관계에서 남성이 지배적인 위치에 있었지만, 이런 관점은 SM 행위에 있어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복잡하고 거대한 현대 사회는 “Masochist Servers”라 불리는 사람들을 만들어 내었다. 

그들은 결코 지배 역할의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역할의 참여에 동의하고 있다.

심리적인 요인을 제외하면 피학적인 역할은 사람들을 끌어들일수록 수익이 커진다. 피학적 역할은 결국 SM이란 희극 속에서 진정한 소비자이며, 가학적 역할은 단지 그들의 욕망을 만족시킬 뿐 SM 행위에서는 일종의 종업원과 같다.



SM의 다섯 번째 특징은 가학 성향과 피학 성향이 간혹 동일한 사람에게서 함께 나타난다는 점이다. 즉 한 사람이 SM의 주체가 되기도 하고 객체가 되기도 한다.

이는 프로이트(Freud)가 가장 먼저 제시했던 견해이기도 하다. 프로이트는 “성관계 중에서 타인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쾌감을 느끼는 사람은 고통을 받음으로써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하였다.(Freud, 1990, 103)

프로이트는 가학 성향자의 경우 대부분 피학적인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보았다. 이는 가학 성향자 자신이 과거에 쾌감과 고통을 함께 체험했었기 때문에 타인에게 고통을 가해야만 쾌감을 얻는다는 것이다. 

만약 가학 성향을 가진 어떤 사람이 과거에 쾌감과 고통이 어우러진 피학을 경험한 적이 없다면 타인에게 고통을 가하더라도 쾌감을 느끼기 쉽지 않다.

프로이트는 또한 이러한 상반된 측면을 결합하여 “중대한 이론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러한 현상을 양성애자 중 남성적인 기질과 여성적인 기질에 결부시켜, 양자의 구별과 대립이 심리분석 속에서 항상 능동성과 피동성의 구별과 대립으로 나타난다고 하였다.


단 몇몇 에세머들은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이러한 관점에 동의하지 않았다.

예컨대 마커스(Marcus)는 “피학 성향이 있는 한 여성의 자격으로서 내가 유일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이론이 바로 내가 가학 성향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라고 하였다.(Marcus, S. Freud and the Culture of Psychoanalysis, Studies in the transitiona From Victorian Humannism to Modernity, 58)
 
이는 비록 개인적인 느낌에서 나온 결론이긴 하지만, 일리가 있다. 몇몇 에세머의 경우 가학적 혹은 피학적인 역할 중 한 측면만 좋아할 뿐이지, 그 역할을 바꾼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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