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웹서핑을 하다가 일본 SM의 기원에 대해 올라있는 글을 보았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학술적인 내용에 반가움 가득한 마음으로 읽어보았다.
하지만 기대보단 실망이 더 컸다.
그 내용이 일본의 어떤 사이트 내용을 번역한 것으로 보이는데, 오류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내용 중 현대 일본 SM의 기원을 伊藤晴雨(이토 세이유)라 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나, 70∼80년대 성황을 이루었던 일본의 SM 잡지의 기원을 서스펜스 메거진(サスペンスマガジン)으로 본 것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서스펜스 메거진이란 잡지는 쇼와(昭和) 40년, 즉 1965년에 창간되어 1980년까지 발행되었으며, 그 내용에 있어 SM적인 것을 많이 다루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일본에 있어서 SM잡지의 기원은 쇼와 22년(1947년)에 창간되어 1975년에 폐간된 奇譚クラブ(The KITAN CLUB)임이 확실하다.
이 잡지를 통해 SM 화보 뿐만 아니라, 團鬼六의 "꽃과 뱀(花と蛇)", 沼正三의 "가축인간 야프(家畜人ヤプー)" 등 수많은 SM 명작소설들이 소개되었다.
1947년 奇譚クラブ 창간호 표지
이 뿐만 아니라, 본디지를 굳이 일본식 용어인 긴박으로 표현하는 점 또한 마땅치가 않았다.
긴박(緊縛)이란 시바리(縛り)와 더불어 본디지를 지칭하는 일본식 용어이다.
아무리 일본이 SM에 있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라 할지라도 굳이 일본식 용어를 아무런 비판도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재고해야 하지 않을까?
또한 본디지의 한 종류 중에 海老縛り란 것이 있다. 이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새우 묶기" 정도가 될 것이다.
그 결박 모양새가 아래의 이미지처럼 마치 새우처럼 몸을 둥글게 마는 형태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용어는 우리말 번역이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海老縛り(새우 묶기)
하지만 逆海老縛り이란 용어를 "반새우 묶기"로 번역한 대목에선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반(反)이란 단어에 반대의 의미가 있다지만, 어색하기 짝이 없고 의미전달에 있어 부족함이 너무 많다.
이 逆海老縛り은 "역새우 묶기" 정도로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역새우 묶기를 서구에서는 "Hogtied"라고 부른다.
逆海老縛り(역새우 묶기)
서구의 hogtied
사족 하나!!
국내의 본디지나 SM 관련 사이트 혹은 블로그를 보다 보면 의미불명의 일본식 용어를 아무 비판없이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우리말로 도저히 옮길 수 없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엄연히 그와 상응하는 우리말이 있는 경우에는 정확히 옮겨야 하는 것 아닌가?
예를 들면 조교(調敎), 공중부양 등등...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이다.
예전에 한번 언급했던 부분이지만 다시 중언부언할까 한다.
먼저 "조교"란 단어를 살펴보자.
이른바 초보 에세머들이 입에 달고 사는 "조교"란 단어는 한자로 "調敎"이며, 일본식 SM용어이다.
일본 SM에서 말하는 조교(調敎)란 즉 주인이 초보 에세머를 가르쳐 제대로된 노예로 길들인다는 뜻이다.
물론 우리 나라에서도 이 "調敎"라는 단어가 있지만 그 뜻은 전혀 다르다.
우리 나라에서 "調敎"란 승마 훈련이란 의미로 쓰인다.
간혹 단어의 한자 의미를 깨우치지 못한 일부에서는 "군대의 조교는 피교육자를 훈련시키는 것이니 맞지 않느냐" 하시는데, 어안이 벙벙하고 기가 찰 따름이다.
그 조교는 "調敎"가 아니라 "助敎"이다. 이 "助敎"는 훈련을 할 때 교관을 도와 교재를 관리하고 훈련 시범을 보이거나 피교육자를 인솔하는 역할을 맡은 임무를 맡은 사람을 가리킨다.
음이 같다고 뜻까지 같을손가?
그렇다면 같은 한자 문화권인 중국에 혹시 에세머들이 말하는 조교라는 단어와 부합하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어디 한번 살펴보자!
물론 중국어에도 "調敎"라는 단어가 있긴 하다.
단 그 의미는 어린아이, 즉 어린이를 가르친다는 의미로 쓰인다.
의미불통의 일본식 단어를 마치 우리말인양 아무런 거름장치도 없이 함부로 쓰는 것 분명 되짚어봐야할 것이다.
그리고 "공중부양"이란 단어에 대해 한 마디할까 한다.
공중부양(空中浮揚)은 말 그대로 한자 단어이다.
흔히 본디지에 관심이 많거나, 스스로 좀 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자랑삼아 쓰는 단어 중의 하나이다.
"난 공중부양도 해봤어"라고 말이다.
그들이 말하는 공중부양이란 것이 로프 따위를 이용하여 서브를 매달았다는 의미로 쓰는 것이 맞다면 제발 단어선택 좀 똑바로 하길 권고하는 바이다.
무슨 선가(仙家)의 수련생인가? 아니면 제2의 허경영인가?
"부양(浮揚)"이란 어떤 물체가 자력으로 떠오는 것을 말한다.
참 대단들하시다. 염력으로 서브를 공중에 떠오르게 하시다니...
우리 에셈계에는 대단한 초능력을 가지신 분들이 참 많은듯하다.
비아냥처럼 들리겠지만 용어란 명확한 의미부여가 있어야 한다.
적어도 공중부양이란 말 대신에 "매달아 묶기" 혹은 "매달기" 정도의 용어를 쓴다면 몰라도 말이다.
우리끼리만 통하면 되지 뭘 그리 따지냐~ 라고 하실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SM이란 것이 아직 우리 나라에선 정착단계에 있는 일종의 외래 문화이다.
어떤 문화이건 초기에 받아들이고 정착화하는 세대들의 책임이 막중하다.
SM이란 것이 개망나니들의 발정을 해소하는 수단이 아니라면 분명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비록 단편적인 예를 들었지만 이러한 것들이 한 둘이 아니다.
SM의 발원지는 일본이 아니다.
하필 꼭 일본식 용어가 마치 정통인양 입에 달고 사는지...
국적불명, 의미불통의 요상한 단어를 입에 꽨다고 고수라고 인정해주진 않는다...
그리고 일본 사이트나 블로그 내용을 번역기로 돌려서 소개하는 것 자체는 좋다.
하지만 적어도 그 내용을 검토는 해봐야 하지 않을까?
이 절학무우 역시 SM이나 본디지 관련 자료를 거의 해외에 의존한다.
자료가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건 달려 가는 스타일인지라~
하지만 이미지가 아닌 글일 경우는 나름 평가하고 가감하며, 오류가 있으면 수정한 후 나 자신의 경험을 함께 담아 소개하고 있다.
글 하나, 단어 하나에 불과하지만 타인에게 소개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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