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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18일 금요일

중국 고전 소설 속의 BDSM


서양도 아닌 동양에서 용어야 비록 지금처럼 BDSM으로 불렸을리는 만무하지만, 지금의 BDSM과 유사한 면모를 가진 소설이 있어 소개한다.

아래는 이 절학무우가 고교시절에 보면서 중국에 이런 소설도 있구나 하면서 유심히 보았던 내용인데, 그 내용을 요즘의 표현법으로 약간 수정하여 다시 올린다.


 

제목은 "외눈 여자를 좋아한 사내"이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하남(河南)에서 공부하겠다고 북경(北京)에 올라 온 하생(何生)이란 사내는 넉넉한 돈으로 여관에 자리 잡고 이곳저곳의 스승을 찾아다니는 유복한 집안의 막내아들이었다.

기실 과거가 별로 급한 것도 아니어서 놀이 반 구경 반 삼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알게 된 조계용(曺溪湧)이라는 같은 나이 또래의 젊은이와 함께 어울려 다녔다.

어느 날 그들은 술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여자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난 말이야, 좀 이상해. 자네니까 털어 놓네만......”

짐짓 비밀스런 이야기를 하는 듯이 하생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왠지 한 눈을 가진 여자가 좋단 말이야. 모두들 발이 작거나 또는 허리가 실버들처럼 나긋나긋해야 하느니, 실눈을 뜨고 눈동자는 늘 우수에 어려 있어야 하느니 하는데, 나는 눈을 가린 여자에게 이상하게도 끌리거든. 우습지? 그것도 한 눈으로 지긋이 쳐다보기만 해줘도 몸이 녹아들 것 같단 말이야.“

수재답게 넓은 이마, 오똑한 코, 입술이 알맞게 얇은데다 흰 살갗을 가진 미남자로 술만 들어가면 기분이 들떠 이런 소리를 예사로 지껄여 댔다.

“허...그거 참 묘한 성미로군.”

조계용은 선뜻 내키지 않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게 별로 이상스런 취미는 아닐거야. 여자를 좋아하는 데야 사람마다 취형이 다르지 않나 말이야.”

조계용은 다시 끄덕여 보였으나, 속으로는 수일 전 여관방에서 그를 기다리다가 우연히 벽장 속에서 발견한 비밀스런 그림을 본 사실이 생각났다.
(이 친구야 그 외눈박이 여자보다 더 비밀을 담은 그림을 난 벌써 봤단 말이야!)

그는 하생과 헤어진 후 집으로 돌아왔다.
(외눈박이 여자만 보면 온몸이 녹아난다? 흠......!)

조계용은 한숨을 내쉬었다.
같은 나이지만 좀처럼 따라가기 힘든 그의 실력에 감탄한 조계용은 하생을 속으로 수재라고 믿고 존경해 온 터였다.

그래서 그런지 자신과 달라 수재에게는 여러 가지 이상한 취미나 버릇이 있고 미적감각에 대해서도 묘한 취향이 있구나 싶어 그저 감탄만 할 뿐이었다.

그는 하생의 비밀을 호기심으로 훔쳐봐서 알고 있다. 아무리 친구라고는 해도 남의 짐 보따리를 풀어보는 따위의 권리는 없지만, 이 조계용이란 사내의 성격에는 어딘가 개처럼 킁킁거리며 남의 비밀을 살피기 좋아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 보따리 속에 가득히 쌓여 있는 것은 수백 장이나 되는 그림이었다. 모두가 섬세하게 그려진 춘화도(春畵圖)였는데, 이상하게도 그가 자주 보아 온 것들과는 좀 다른 것들이 많았다.

대부분 여자가 밧줄에 묶인 채 남자에게 당하는 그런 얄궂고 참혹한 그림이었다. 그런가 하면 전족(纏足)에서 뚝뚝 흐르는 피를 핥고 있는 사내의 만족에 찬 야수적인 표정을 그린 것도 있었다.

“잘도 이런 것만 주워 모았군! 아니, 어쩌면 이런 것만 그리기를 좋아하는지도 모르지......”

단순한 춘화도만으로도 한동안의 눈요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조계용은 그때 비로소 하생에게 그러한 괴벽(怪癖)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원래가 남의 비밀을 살피기를 좋아하는 천성인지라 대범하게 생각하고

“역시 수재쯤 되면 머리가 날카로워서 여느 사람과는 다른 취미를 가지게 되는 모양이로군.”

이렇게 감탄했을 뿐이었다. 나이는 같아도 하생과 친해지면서부터 그는 아버지에게 “하생 좀 닮아보렴!” 하는 꾸중을 버릇처럼 들어왔기에 그가 하생에게 품고 있는 열등감은 어느새 몸에 배어서 이런 일에까지 감탄해버리는 것이었다.

조계용은 이런 그림을 좋아하는 하생의 숨은 버릇이 실제로 전개되는 장소를 덮쳐 구경하고 싶은 생각이 불길처럼 일어났다.

어느 큰 찻집의 안뜰. 모란꽃이 활짝피어 뜰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 밖에 이름 모를 온갖 꽃들이 이 구석 저 구석에 만발해 있다.
점잖은 손님들이 많이 출입하는 집답게 보기 좋게 손질이 되어 있는 곳이었다.
하생은 이 집에 오기만 하면 뜰안을 한 바퀴 산책하는 버릇이 있었다,

꽃밭 동쪽에는 장미꽃으로 에워 쌓인 낮은 담이 있고, 그 뒤로는 가파르지 않은 언덕이 이어져 있는데, 그 너머는 다른 집과 잇닿아 있었다. 낮은 담장 너머 드문드문한 나무 숲길을 젊은 여자 한 사람이 걸어가고 있었다.

전족한 발이 불편한 모양인지 그 걸음걸이는 아기처럼 느리고 아장거렸다. 무엇보다 그의 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그 여인의 한쪽 눈이 하얀 헝겊으로 가려져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위태롭기까지 한 걸음걸이는 외눈으로 인해 더욱 불편한 듯 고개를 떨구어 발치를 조심조심 살펴가면서 올라가고 있었다.

하생의 입에서 무엇인지 모를 신음소리가 나왔다.
다음 순간 그는 자기도 모르게 담장까지 뛰어갔다. 그녀는 머리를 길게 늘어뜨렸는데, 칠흑같이 검었다. 그래서 눈을 가린 흰 천이 더욱 청순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걷기가 몹시 괴로운 듯이 보이는 여인의 모습은 이상한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흠......”

또 다시 하생은 가느다란 신음소리를 냈다. 아무런 꾸밈이 없는 여인의 모습에 더욱 끌려 들어갔다.
하생의 눈에는 한 눈을 가린 여인이 밧줄에 꽁꽁 묶인 여인보다 더욱 애련하고 안쓰럽게 보였다.

여인은 고개를 떨군 채 천으로 가린 눈을 감추는 듯이 돌려 하생의 시선을 피하며 그의 앞을 지나갔다.

(어느 집 딸일까?) 뒤쫓아 가서 이름을 묻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겉으로는 어디까지나 여인에 대해서 깨끗한 귀공자였다. 그만큼 속으로는 남몰래 짓눌린 욕망이 도사린 채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었다.

잠시 후 그는 크게 머리를 끄덕였다.
(음~ 저 너머 의원집으로 가는 모양이군. 그렇다면 매일 이 시간에 볼 수가 있겠구나)

말 한 마디 걸어보지 못하고, 뒤따라 가보지도 못한 그는 처음으로 사람을 느낀 소년처럼 결심을 했다.
여인이 숲 사이를 내왕하는 길은 의원집으로 가는 지름길이구나 하는 하생의 추측은 들어맞았다.

다음날 아침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인은 또 사뿐사뿐 지나갔다. 오늘도 황홀감에 젖은 하생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 다음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중국인들은 비를 제일 꺼려한다. 혹시나 하는 불안한 예감이 들었으나, 하생은 우산을 받쳐 들고 담장 그늘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비가 와서 못 나오는지, 아니면 눈병이 다 나았는지......
그는 실망한 끝에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영영 만나지 못할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그 다음날, 말하자면 그녀를 발견한 날로부터 나흘째 되는 날 아침, 비가 그치고 맑은 하늘이 보이자 그녀는 다시 모습을 타나냈다. 하생은 뛰는 가슴을 달래며 넋을 잃고 처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도 하생의 뚫어질 듯한 시선을 눈치 챘는지 맑은 한쪽 눈에 웃음을 띠고 가볍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비가 개니까 꽃밭이 더욱 아름답군요.”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오른쪽 눈과 입가에 고혹적인 미소를 지어보였다.

“네~”
하생은 정신없이 대답했다.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그녀의 표정은 흰 천으로 가린 눈이 아파서인지 우수가 깃들어 있는 듯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마음에 드신다면 한 송이 드리지요. 자아~ 이거......”
헛소리처럼 말하며 하생은 꽃 한 송이를 꺽어 불쑥 그녀에게 내밀었다.

“고마워요~”
그녀는 어쩐지 경박스러워 보이는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다. 하생은 다음날 정원 관리인을 시켜 그녀에게 모란꽃을 색색이 섞어 한 아름이나 보냈다.
이렇게 하여 하생과 그녀와의 담장을 사이에 둔 사랑이 차츰 무르익어 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름은 도화(桃華)라고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낭만적인 출발과는 반대로 이들의 관계는 극히 현실적인 진전을 보고 말았다. 


즉 며칠 후 도화가 하생이 묵고 있는 여관방으로 옮겨 온 것이다. 이를테면 벼락 첩이라고나 할까. 하생으로서는 그녀와 결혼할 뜻도 없었고 그녀도 그의 그런 처지를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일을 성사시킨 사람은 바로 하생의 벼락 친구 조계용이었다.

“제발 저의 슬픈 과거를 묻지 말아주세요. 그 대신 저도 당신과의 관계에 지나친 미련을 가지지 않고 당신의 입장과 체면을 지켜 드리겠어요. 그리고 당신이 나를 싫어하는 눈치를 보일 때는 언제든지 깨끗이 물러나겠어요.”

그녀는 다 나은 눈을 여전히 천으로 가리고 하생이 좋아하는 대로 밧줄에 묶이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도화, 너는 참 좋은 여자야!”

한 눈을 가린 채 옷을 벗기고 뒤로 해서 두 손을 묶는다. 그런 다음 걸상에 앉히거나, 바닥에 눕히거나, 또는 침대 위에 눕혀 온갖 모양으로 여인의 교태 어린 부분을 감상하고 또한 자기도 즐기는 것이었다.

꽃밭너머로 보던 청초한 도화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 대신 농익은 육체의 여기저기를 칭칭 감고 있는 밧줄 사이로 봉긋봉긋하게 솟아 오른 살결은 하생의 몸과 마음을 쾌감으로 부들부들 떨리게 했다.

(이 여인은 과연 내가 그림으로만 보아 온 그런 여자가 아닌가?)
그녀는 질질 끌려 다니면서도 아프다는 말 한마디 없이 고통이 주어질 때마다 요염한 신음소리를 내었다. 또한 그때마다 하생은 온몸을 전율케 하는 짜릿한 쾌감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녀는 이러한 하생의 만족을 확인한 다음부터 어찌된 일인지 그의 요구를 잘 들어주지 않으려는 눈치가 보였다.

(역시 이 여인은 그런 족속의......여자로군. 고운 옷도 입고 싶겠지.)
차츰 그녀의 잔학스런 교태에 빠져 들어가는 하생은 돈으로 그 값을 치르게 되었다,
으레 돈이 건너간 날에는 엄청난 만족이 그에게 주어지곤 했다.

한쪽 밧줄을 당길 때마다 몸을 뒤틀고, 괴로움과 싸우면서 번쩍이는 외눈, 악문 이빨 사이로 흘러나오는 기성에 가까운 신음소리는 하생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황홀경으로 몰아넣었다.
압박감이 전신을 살갗을 감쌀 때 꽃송이 같은 입술이 자신도 모르게 여러 가지 모양으로 일그러지고 안타까운 신음소리를 연발한다. 


그럴 때마다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옥수(玉水)가 촉촉이 그곳을 적시면 하생은 그곳에 육탄 공격을 가했다. 도화의 입은 크게 벌어지고 온몸은 번들거리는 땀으로 젖었으며, 하생의 혈관은 가학의 기쁨으로 터질듯했다.

“좋아~ 좋아! 네가 그렇게 괴로워하고 좋아하는 표정은 정말 최고야. 정말 미칠 것 같구나”

하지만 이렇게 절정을 느낀 다음 날은 값이 껑충 뛴다.
원래가 부호의 아들인 하생은 돈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반면 이러한 쾌락에 정신이 팔리자 그는 끝내 그녀를 아내로 삼을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이 여자야 말로 세상에 둘도 없는 여자다!)
그는 조계용을 통해 교섭을 시작했다. 자주 드나드는 술집에서 하생과 조계용은 술잔을 놓고 마주 앉았다. 그 자리에서 하생은 도화와의 결혼 문제를 꺼냈다. 


그러나 조계용의 대답은 냉담했다.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전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 여자는 그렇게 특이한 습성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고, 그 이야기를 꺼내기만 하면 다시 나타나지 않을 테니 조심하라고 일러 줄 뿐이었다.

때문에 하생과 도화의 관계는 날마다 달마다 예전처럼 그대로 지속되었고, 그에 따라 그녀의 값도 천정부지로 올라가 끝내 하생의 재산 대부분을 털어먹는 결과를 불러왔다.

어느 날 도화는 소식을 끊고 자취를 감추었다.
거지 신세로 전락한 하생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조계용에게 돈을 꾸러 갔다.

그때 하생은 조계용의 침실 문틈으로 도화와 비슷한 여인의 옆모습을 발견했다.

(흐흠......이제 알았다. 망할 자식! 더러운 계집을 미끼로 돈을 빨아 먹었구나. 휴~ 내가 병신이지......외눈박이 계집이 좋다고 했더니 계용이란 놈, 연극을 꾸몄구나!)

허탈감에 그대로 돌아서는 하생의 발걸음은 마냥 무겁기만 했다.


본 내용은 향파 이주홍 선생이 편역하고, 1971년에 동서문화사에서 간행한 [中國諧謔小說全集] 에서 발췌한 것으로서, 옛날에도 우리와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이 분명 존재했음을 방증하는 자료이기도 하다.

편역자가 출전을 밝히지 않을 까닭에 위 글의 원출전으로 가장 유력시 되던 [요재지이(聊齋志異)]를 일일히 확인했지만,  찾아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울 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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