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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7일 금요일

일본 Bondage 약사(略史)

오래 전 이 블로그에 유사한 내용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만, 내용을 조금 더 추가하여 올립니다.

★ 퍼가실 분은 출처를 밝혀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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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SM 문화는 다양한 형태의 표현 형식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일본의 역사와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일본 SM의 확립은 여자 죄수 류를 주제로 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오닌의 난(應仁之亂)*이후 센고쿠(戰國) 시대와 에도(江戶) 시기에서 메이지(明治) 시기에 이르는 형벌 그림을 가리킨다.


* 오닌의 난(應仁之亂) : 일본 교토(京都) 지역에서 일어난 내란(1467~1477년)으로서 백년 간의 기나긴 센고쿠 시대(戰國時代:1490~1590년)의 계기가 되었으며, 이 난을 계기로 장원제도가 무너지고 대영주인 다이묘(大名)가 부상하게 되었다.

   
센고쿠 시대의 고문 방식은 잔혹하기로 유명하다.

즉 화형, 신체절단형, 묵형(문신), 석포주(石抱柱 : 무거운 돌을 무릎 위에 올려 놓은 형벌), 온천열탕형벌, 목마(木馬) 태우기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방법들이 동원되었는데, 각지에서 야심을 가진 다이묘들이 할거하던 센고쿠 시대라는 혼란의 시기가 이처럼 비인간적인 여러 가지 징벌적 고문이 성행하게 하였다.


에도 막부가 1742년에 공포한 형법에 근거하면 일곱 가지 형벌(사형, 추방, 노예형, 체벌, 자유형, 노역형, 벌금형)과 네 가지 고문(태형, 石抱*, 밧줄로 묶기, 거꾸로 매달기)이 있었다.

 
이 가운데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에도 시대의 네 가지 고문술인데, 이는 오늘날 일본 SM 문화의 주된 전형이기도 하다. 따라서 일본인들은 현재 일본 SM 문화의 뿌리를 이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 시기 형벌의 또 다른 측면은 공개적인 모욕이다. A.D 794년 야마토(大和) 왕조가 나라(奈良)에 건립되기 전에 범죄자를 공개적으로 모욕하거나 공개적으로 형을 집행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었다.


단 여자 죄수에 대한 형집행을 절대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는데, 에도(江戶) 시기에 이르러 이러한 원칙이 무너졌다.

 
瀧川政次郎의 [日本行刑史]에 따르면 죄인을 결박하여 말에 태운 후 글로써 그 죄행을 적은 다음 마을을 한 바퀴 돌게 했다고 한다.

瀧川政次郎은 특히 여자 죄수에 대한 형벌은 남성 구경꾼으로 하여금 변태성욕을 불러일으키게 했다고 지적하였다. 여자 죄수를 공개적으로 모욕한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경각심을 주고, 한편으로는 죄인에게 최대한 수치를 주고자 함이었다.

여자 죄수를 공개적으로 모욕함으로써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이러한 행위들은 현대 본디지 예술을 지배하는 주제가 되었다.


에도 막부의 4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쓰나(德川家綱)와 5대 쇼군인 도쿠가와 쓰나요시(德川綱吉) 이후 도쿠가와 막부 시기의 일본사회는 비교적 안정되었으며, 형벌 행위 또한 더욱 극적으로 변화되었다.

 
즉 에도 문화 절정기의 형벌은 일종의 풍속으로 변질되었고, 대중을 선동하는 오락적 색채를 띠게 되어 대중들 속으로 널리 퍼져나갔는데, 현대 SM의 문화적 특징, 특히 여성과 본디지의 기원은 멀리 이 시기에 비롯되었다.

 
당시의 징벌 및 형의 집행은 거의 대부분 비교적 낮은 단계에서 행해졌다.

에도 시대의 범인 체포는 ‘與力’, ‘同心’ 등의 전문 하급 관리들에 의해 행해졌는데, 일본 본디지는 이들 ‘同心’들에 의해 발전되고 전해졌다.


M 문화에는 공권력에 대한 풍자적 요소가 들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어떤 그림들을 예로 들면 반동가문의 처자를 고등경찰이 강간하고 고문하는 장면이 보이고, 에도 시기의 그림에도 여죄수가 관리들에게 수치를 당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으며, 백화점의 남자 직원이 물건을 훔치던 여성을 추행하는 장면, 부정 차표를 사용한 여성을 역장이 강간하는 장면 등, 이러한 그림들은 고문과 강간을 정당화하고 피해자를 범죄자화하고 있어 성적학대 색채가 농후하다.


비록 피해자들이 두려움과 수치로 떨고 있지만, 그들은 모두 자신의 범죄에 대한 응징을 수긍하고 있다.


그림에서 보여지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이처럼 취약하였다. 여성의 연약함과 무력함 등을 특징으로 묘사하는 그림들이 잠차 늘어감에 따라 이른바 사디스트들의 욕망을 자극하였는데, 그 결과 본디지 예술에도 이러한 심리가 반영되기에 이르렀다.


 
이토 세이유(伊藤晴雨)


“나는 1908년부터 본디지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는데, 얻은 것이라곤 고달픔과 변태성욕자라는 낙인 뿐이었다”


이는 1953년 이토 세이유(伊藤晴雨)가 한 잡지에 기고한 글에 있는 말이다.


이토 세이유는 일본 현대 본디지의 아버지로 불리는데, 그가 살았던 그 시대에는 SM이 공개적이지 못했으며 에세머들은 비정상 혹은 변태로 간주되었다.

즉 이를 다르게 말하면 1950년대 만하더라도 본디지가 일본 사회에서 비정상적이고 변태적인 행위로 비춰졌다는 것이다.


이토 세이유가 1950년대 초에 이러한 글을 기고할 때는 염가의 잡지가 쏟아져 나와 동양적 색채의 색정 잡지 시장이 확대되고 있었다.

 

1953년 당시 수많은 염가 잡지 중의 하나였던 “奇譚クラブ(Club)”은 이른바 진정한 변태 잡지였다.


奇譚クラブ은 1948년 창간되었는데, 원래는 일반적인 색정 내용을 다룬 잡지였다. 그러던 중 오사무 노무라(喜多玲子)가 그린 일련의 본디지 그림 때문에 SM 경향을 띤 잡지로 변화되었다.


奇譚クラブ


오사무 노무라가 그린 본디지 화보

 
오사무 노무라와 奇譚クラブ 및 裏窓(Uramado)의 편집자인 수마 타시유키(須磨利之), 그리고 소설가인 美濃村晃(필명)은 동일인인데, 스스로 이토 세이유의 마지막 제자라고 한 사람이다.


“ 読切ロマンス(Romance)”는 B급 색정소설을 위주로 한 잡지였다.

이 잡지에는 많은 본디지 사진 및 그림이 실렸는데, 편집자인 上田青柿郎이 직접 그리고 촬영한 것들이다. 그는 이토 세이유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 이토 세이유의 사진 촬영회에 항상 참석했었다.

 
読切ロマンス

 

많은 촬영회를 통해 생산된 본디지 사진들은 奇譚クラブ이나 裏窓 등의 SM잡지의 간행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였다.

 
裏窓은 1955년애 간행되었으며, 처음에는 시대적 배경의 소설을 게재하였다. 그러다 1960년경에 SM잡지로 바뀌었는데, 이는 奇譚クラブ의 전임 편집장인 飯田豊一의 노력 때문이었다.

 裏窓 (1957년 7월호 표지)


飯田豊一은 [奇譚クラブ]의 가장 중요한 투고자였는데, 飯田豊一은 본디지 마스터로 더 유명한 누레키 치무오(濡木痴夢男: 히로키 류이치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Bakushi에서 본디지 마스터로 출연한 바 있음)의 필명이기도 하다.

飯田豊一, 즉 누레키 치무오(濡木痴夢男)는 1970년대에 일본 SM 잡지의 황금시대를 맞는 토대를 닦았으며, 아울러 뒤이은 SM 비디오의 발전을 불러왔다.


누레키 치무오(濡木痴夢男)

 
飯田豊一의 기획과 노력으로 裏窓은 일본에서 가장 평범하지 않은 SM잡지로 불렸으며, 吉田久、藤澤修 등의 천재 촬영가와 예술가 나카가와 아야꼬(中川彩子)를 길러 내었다.


이 밖에도 Phoenix社의 도움으로 해외의 사진과 그림들을 게재하기도 하였다.


Phoenix 社의 森下高茂는 일찍이 미국에서 SM 방면의 전문가들, 예컨대 John Willie, Fakir, Musafar(세계 최초로 창간된 신체개조 잡지인 Fancy의 발행인) 등과 접촉하기도 하는 등 해외와의 교류도 시도하였다.

 
이 후 SM잡지는 70년대초부터 80년대에 이르러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되어 수많은 잡지, 예컨대 SM Collector、SM Select、SM Kitan、SM Mania、SM Fan、SM Sniper、SM King 등이 창간되었다.

 
많은 SM잡지들간 차이점, SM 예술 표현 속의 미세한 차이 등을 일반인에게 설명하기 쉽지 않다. 그들의 눈으로 볼 때 여성이 희생물이 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일본 SM에는 대략 아래와 같은 두 가지 조류가 있다.


하나는 비애와 학대가 어우러진 어두운 미학적 표현이고, 다른 하나는 다소 경박한 색정적인 표현이다.


특기할 것은 단 오니로쿠(团鬼六)가 [꽃과 뱀(花と蛇)]이란 소설을 쓴 후 여성의 음부 묘사가 뚜렷해졌으며, 이 시기를 시작으로 진동기나 관장 등이 SM의 영역 속으로 들어왔다는 점이다.
 

단 오니로쿠(团鬼六)

 
현재 일본의 본디지는 여성의 성기와 에널, 음부(陰部) 등 수치스런 부위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전통적인 본디지에서는 없었던 부분이다.


이처럼 현대 일본의 본디지는 성행위의 전주곡인 전희의 하나로 변질되어 미학적인 것을 중시하지 않게 되었는데, 이는 진정한 본디지 예술이 아니라 할 수 있다.


★ 전후 일본 본디지에서는 John Willie 등을 필두로 하는 서구 본디지의 영향을 받아 라텍스 혹은 가죽을 소재로 한 아래와 같은 형식의 본디지가 유행하기도 하였다.


결론적으로 일본의 본디지는 그 기원을 에도시대로 보기도 하는데, 결국 현대 본디지의 원형은 伊藤晴雨(이토 세이유)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지금은 갈수록 일본의 전통적인 본디지를 고수하기 보다는 서양적 현대적인 아이템을 많이 첨가하여 볼거리 위주로 나가는 경향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세월이 흘러 후배들이 우리 나라의 본디지 역사에 대해서도 논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해 본다.


이상 절학무우의 잡설이었습니다.


2020년 4월 23일 목요일

문화적 현상으로 본 SM

 

우리 나라의 주류문화는 예로부터 지금까지(여기서 ‘예로부터’란 성리학이 국가의 지배 이념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시기를 가리킴) 줄곧 성을 터부시하는 금욕주의적 특징을 가져왔으며, 이로 인해 최근을 제외하고는 성(性)에 대한 담론과 연구가 전무하다시피 하였다.

이는 성리학 이념이 단순한 국가의 지배 이념을 넘어 하층민들의 삶 속에까지 깊숙이 파고든 한국적인 문화특성 때문이며, 중국 ․ 일본과 비교하더라도 그 정도가 상상을 불허한다.

적어도 중국과 일본의 경우 성리학 이념은 국가의 지배 이념에 불과할 뿐이었으며, 일반 민중의 삶, 특히 성에 대한 부분에서는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이는 동양 삼국 중에서도 그 유래가 드문 강력한 중앙집권과도 무관하지 않다.

각설하고 이런 맥락에서 볼 때 SM이란 일종의 하위문화(subculture )는 지금에 이르러서도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른바 변태라는 굴레를 씌워 백안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SM은 생물권역(Biological community)에서는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며, 실제 인류의 사회생활 속에 줄곧 존재해왔다.

이에 간략하게 나마 SM이 존재하는 과학적 근거와 객관적인 조건 및 그 기반을 아래와 같이 살펴보고자 한다.

SM이 “Sadomasochism”의 약자이며, 가학피학성애(加虐被虐性愛)로 불린다는 것을 모르는 에세머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본 절학무우는 이를 차라리 “SM 문화” 혹은 “SM 현상”으로 불렀으면 한다.

현실 생활 속에서 SM 현상은 능동과 피동의 두 가지 형식으로 표현된다.

중국의 여류 사회학자인 이은하(李银河)는 SM에 대해 그의 저서《虐恋亚文化》에서 “쾌감(快感)과 통감(痛感)이 어우러져 일어나는 성적 행위”라고 정의하였으며, 어떤 학자는 통감을 통해 쾌감을 얻는 성적 행위라고 하였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SM적인 현상이나 문제에 대해 두 가지 상이한 관점을 가져 왔다.

그 하나는 프로이트로 대표되는 관점으로서, 가학적 심리는 남성 고유의 특징이고 피학적 심리는 여성 고유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프로이트는 일찍이 "가학과 피학 현상의 뿌리는 정상적인 사람에게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고 하였다.

다른 하나의 관점은 푸코로 대표되는 관점으로서 SM을 권력의 유희와 순수한 감각적 쾌감으로 보는 것이다.

SM에 대한 부정 혹은 긍정을 떠나 우리들은 SM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며, SM의 발생과 발전에 상당한 과학적인 근거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1. 생물학적 근거에 따른 SM의 발생과 발전

생물학자들은 생물계에서도 보편적인 SM 현상이 존재한다고 여긴다. 이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것이 바로 속칭 black widow로 불리는 독거미이다.

이 거미는 서양 문학작품 속에서 남자를 파멸로 이끌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냉혹한 여자에 비유되기도 한다.

black widow는 짝짓기 과정에서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는다. 단 짝짓기 기간을 제외하고는 이성 동류를 해치지 않는다. 

black widow의 이처럼 괴이한 성행위적 특징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반하는 것일까?

미국의 과학자들은 이에 대해 연구한 결과 짝짓기 과정에서 수컷 거미에게 사정행위가 발생하지 않았으며, 수컷이 암컷에게 잡아먹힐 때, 특히 수컷의 머리 부분이 물려 빈사상태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사정행위가 발생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는 곧 수컷 거미는 피학적 방식을 통해야만 비로소 성적 고조기에 이른다는 것을 설명한다.

미국의 과학자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black widow의 공격무기, 즉 날카로운 이빨을 제거하여 수컷 거미를 잡아먹지 못하게 한 다음 짝짓기 과정을 관찰하였는데, 이 경우 수컷 거미에게서 사정행위가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밖에도 이처럼 극단적인 짝짓기를 하는 곤충으로 사마귀가 있다.

암컷 사마귀 역시 짝짓기 과정에서 수컷 사마귀를 잡아먹는다. 이로 볼 때 수컷 사마귀와 수컷 거미의 생리기능은 대략적으로 일치함을 알 수 있다.

기타 일부 군집성 동물, 예컨대 원숭이와 사자 등의 짝짓기 과정에서도 SM 현상이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2 . 사회학적 근거에 따른 SM의 발생과 발전

인류의 SM 현상 또한 보편성과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류의 SM 현상이 문명의 발전이 일정한 단계에 이르면서 형성된 산물이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SM의 물질적 토대가 되는 로프, 쇠사슬, 가죽옷, 전동 성인용품 등은 모두 인류 문명의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이은하(李银河) 교수는《虐恋亚文化》에서 인간 내면의 공격성, 초조감과 두려움, 죄책감, 사랑의 갈구, 권력관계 등이 SM의 발생 원인이라는 서구 학자들의 관점을 소개한 바 있다.

일부 학자들은 SM 현상을 하나의 이론으로 정립하였다.
작성자의 일부 외국 학자들은 SM 현상을 보편적 이론으로 범위를 넓혀 설명하기도 하였다.

예컨대 미국의 심리학자인 클레어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가학자의 관점에서 볼 때 피학자는 정복당하지 않은 대자연의 객체를 대표하며, 학대 도구는 생산력 요소 중에서 대자연의 객체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도구를 대표한다. 또한 다양한 정복 방식은 대자연의 객체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주관적인 능동성을 대표하며, 전체 가학 과정은 인류가 대자연의 객체를 정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피학자의 관점에서 볼 때 가학은 대자연을 정복한 주체를 대표하며, 가학 도구는 객체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속박의 수단을 대표한다. 또한 가학자는 대자연을 정복하고자 하는 객관적인 존재이다.

전체 피학과정은 인류가 거대한 도전을 통해 자연적인 객체를 정복하고 지배하는 과정에서 아직도 정복되지 않은 객체를 정복하는 과정이며, 피학자의 몸부림과 신음은 자유를 갈망하고 복속되지 않으려고 투쟁하는 정신을 대표한다.“


1930년대 이래로 많은 사람들은 여성들이 태생적으로 피학적인 심리를 가지고 있다는 관점을 받아들였는데, 문화계 뿐만 아니라, 의학계 또한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이러한 관점이 패미니스트들이 반대하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우리 나라는 세계 역사상 보기 드물게 가장 빠른 시일 내에 봉건적 사회에서 민주사회로 변모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수반된 경제적인 성장은 그동안 한국인의 뇌리에서 잊혀져 왔던 성(性)에 대한 논의를 가져오게 했다.

IT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성에 대해 보다 많은 측면을 접할 수 있도록 하였고, 그 과정에서 우리 나라에도 현대적 의미의 SM이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현대적 의미의 SM이 우리 자체에서 태동하여 발전하지 못한 까닭에 외부 세계, 예컨대 일본이나 서구의 SM 문화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일종의 거름장치 역할을 할 수 있는 체계적인 소개 또한 부족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들은 SM이란 것이 결코 기타 문화에서 나타나는 특수한 현상이 아니란 것을 직시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SM이 우리와는 동떨어져 있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와는 전혀 다름 문화권에서 형성된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SM 현상 혹은 문화는 우리의 삶 속에 객곽적으로 존재하여 왔다.

현실 생활 속에서 SM적 경향의 유희와 연출이 존재하고 있고, 문학 작품에서도 SM적 의미의 묘사가 내포되어 있다. 다만 아직은 주류문화의 억압으로 인해 숨기고 부정하고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SM은 인류사회의 각 단계와 각 영역에서 보편적으로 존재하여 왔다. 따라서 우리들은 이를 회피해서는 안 되며, 주류문화 역시 이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

우리들이 사회 문화의 한 부분으로의 SM을 인정하지 않고 그에 대한 담론을 멈춘다면 기성 주류문화는 결코 SM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우리 사회의 건강한 발전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상 절학무우의 잡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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