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들은 멜, 그 중에서도 이른바 멜돔(MD)의 입장에서 기술한 것이므로 오해가 없길 바란다.
우리나라에서 SM은 사회통념상 은밀한 사적인 부분에 속한다. 때문에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제외하고 처음 시작하는 경우 어떻게 하면 파트너를 만나느냐 하는 문제에 봉착하기 마련이다.
멜의 경우는 통상적으로 파트너가 두려워하거나 거절하면 어떻게 할까하는 부담을 갖게 되고, 펨의 경우는 비록 SM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더라도 대개는 자신의 복잡미묘한 생각을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주저하기 마련이다.
무릇 SM 행위는 필연적으로 주도하는 사람과 이를 따르는 사람이 있게 되는데, 주도하는 입장, 즉 이른바 돔의 입장에 있는 경우는 파트너에 대해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
돔으로서의 역량이 뛰어나고 매력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파트너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파트너가 실망 혹은 반감을 가질 때 실패자는 결코 그 파트너가 아니라, 그를 잘 이끌지 못한 당사자이다.
처음부터 SM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펨이 적지는 않지만, SM을 싫어하거나 거부감을 갖는 펨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마음의 병에는 마음을 꿰뚫어 보는 심의(心醫)가 필요하듯, 펨의 SM에 대한 거부심리 역시 그 두려움과 거부감의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해결책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펨들이 SM을 거부하는 원인은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
펨은 멜에 비해 새로운 사물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컨대 펨과 멜이 함께 SM 영상물을 본 후의 반응을 살펴보면 멜들의 경우는 상당수가 곧 실생활에서 그 자극을 체험하고 싶어 한다.
반면 펨들은 그렇지 않다. 설령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쾌감이 그녀들의 마음을 흔들거나,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할지라도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마음이 생겨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펨들의 일반적인 경향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하고 사람들의 사고가 개방됨에 따라 새롭고 신선한 자극을 갈구하는 펨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더구나 요즘은 개인들도 이른바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정보화 시대인 만치 이러한 추세가 강화되고 있다. 따라서 상술한 원인은 시간이 가면 저절로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즉 최근 펨들은 활발한 사회활동을 통해 이전에 비해 한층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는 추세이며, 새로운 문화와 시대의 영향을 받아 전통적인 여성상이라는 굴레를 벗어 던지고 보다 주관적이고 주체적인 사고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고통에 대한 두려움
일반적으로 펨은 고통에 대한 반응에 있어 멜보다 더 민감하다. 이는 펨이 멜이 비해 감성이 발달한 까닭에 나타나는 현상이므로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다.
특히 하드한 SM 영상이나 이미지의 영향을 받은 후, 대부분의 펨은 SM이 고통스럽고 무섭다는 인상을 받기 쉽다.
SM을 처음 체험할 때 만약 경험이 부족하고 조급한 파트너를 만날 경우 쾌감보다는 고통을 더 많이 느끼기 마련이다.
펨들이 결코 육체적인 고통을 감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고통에 특별히 민감할 뿐이다. 전혀 느낌이 없는 고통의 경험은 순간적인 고통 그 자체보다 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돔이라 자처하는 경우는 반드시 SM의 방법론과 다양한 실제에 대해 학습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며, 각종 플레이들이 야기하는 작용과 그 부작용 등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돔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쉬운 것부터 차근차근 해나가야 하며, 어떤 단계에서도 상대방이 인정하지 않거나 수용할 수 없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되며, 경솔하게 플을 진행해서도 안 된다.
SM 관련 이미지나 영상도 필요할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 점 하나는 확실히 해야 한다.
즉 하드한 것보다는 소프트한 내용 속에서 여주인공이 행복에 젖어드는 내용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 말이다.
셋째, 괴로운 느낌에 대한 반감
천성적으로 학대받는 것을 좋아하는 펨은 바닷가 백사장에서 바늘 찾는 것처럼 만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독립적이고 타인의 지배를 싫어하는 펨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펨의 피학적인 경향은 후천적인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멋진 멜에게 의지하기를 바라는 펨들의 내면 심리에는 자아희생적인 색채가 내포되어 있다.
SM의 경우도 팸 서브들은 비록 어떤 대가를 치르거나 심지어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이른바 멋진 돔을 찾는 경향이 있다. 그 목적은 대개 안전과 자신의 피학적 성향을 만족시키기 위해서이다.
SM과 고통이 별개의 것임을 입증하기 위해 플을 할 때는 반드시 상대방이 갈망하는 바를 잘 파악하고 그것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플을 시작할 때, 심지어는 서브가 절정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상징적인 SM 행위를 해야 할 때도 있다. 완전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SM은 절름발이와 같아서, 폭넓은 교감을 나눌 수 없다.
고통은 SM에 수반되는 부차적인 것이다. 만약 당신의 서브가 첫 번째 플에서 여러 차례 쾌감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SM이란 단어만 봐도 흐뭇한 기억이 떠오른다면 어떻게 플에서 부차적으로 따르는 고통이나 괴로움을 염두에 두겠는가?
넷째,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만약 내향적인 기질이 매우 강한 여친이 있다면 그녀는 사랑하는 당신이 SM을 요구하더라도 거절할 가능성이 높다.
설령 당신이 이러한 상황에 직면한다 할지라도 의연함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러한 경향은 현실을 회피하려는 의식에서 비롯된다.
이런 펨들은 매우 조심스럽게 자신을 숨기며, SM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 심리가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므로 결국 당신의 요구를 거절할 것이다.
단 역설적으로 이러한 펨이야말로 완전한 SM 파트너가 될 수 있으므로 실망할 필요가 없다.
단지 당신의 여친에게 “당신과 함께라면 죽을 수도 있다”는 믿음만 준다면 일이 생각보다 쉽게 풀릴 것이다.
만약 당신의 여친이 SM을 싫어할 특별한 이유나 트라우마가 없다면 자신을 믿고 차근차근 설득하고 이해를 시켜라.
이는 매우 정상적이고 이성적인 현상이다. 펨은 일단 안정감을 느끼면 더욱 쉽게 이해한다. 항상 달콤한 말로만 그녀를 SM의 세계로 끌어들이려 한다면, 이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신뢰관계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펨의 자기방어 본능을 풀게 하려면 다정다감함을 가져야 한다. 자신을 즐겁게 하는 수단으로서 SM을 잠시 내려놓고 그녀를 더욱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 내가 그를 사랑해야 그도 나를 사랑할 수 있듯이 절대 일방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또한 평소에 여러 가지 측면에 있어 자신의 성숙한 모습을 보여 믿음을 주어야 하며, 이와 아울러 그녀로 하여금 당신의 SM적 성향을 간접적으로 느끼도록 해야 한다.
어떻게 SM을 언급하느냐에 관해서는 사전에 충분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한 가지 예를 들면 낭만적인 환경과 분위기 있는 곳에서 그녀에게 분위기 있는 선물(?)을 주거나, 평소에 두 사람만의 각색을 통한 유희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SM적인 분위기를 내포하는 유희로 전환해 가는 등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의 여친이 암묵적으로 동의한다면 그 뒤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매우 중요하므로 그 무엇도 아끼지 말고 시도할 가치가 있다.
다섯째, 도덕적 관념의 영향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은 그곳이 어디이건 간에 그 사회의 도덕적 관념을 무시하고 살아가기 어렵다. 만약 당신의 여친으로 하여금 이미 가벼운 SM을 경험하도록 했다 할지라도 아직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SM은 반복할수록 그 정도가 강해지기 마련이므로 이 과정에서 파트너는 각종 두려움과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
SM이란 결국 일방은 가학적이 되고, 다른 일방은 피학적인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가학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에 비해 피학적인 상황에 처하는 사람의 경우는 자신이 천대 혹은 무시 받는다는 느낌을 가지기 쉽다.
이러한 감정은 사회의 정상적인 도덕적 관념과 배치되므로 필연적으로 두려움과 거부감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파트너의 성격적 특징이 어떠하건 간에 그녀 자신이 감내할 수 있는 상한선을 정해두어야 한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려면 반드시 SM 행위를 제외한 시간에는 서로 평등하다는 것을 각인시켜 주어야 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군림하려는 강압적인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이상 절학무의 잡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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