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O",
아마도 SM에 관심이 있는 사람 중에서 이 The Story of "O"를 모른다면 에세머로 위장한 바닐라 취급을 받을 정도로 유명하다.
The Story of "O"는 1954년 프랑스의 여류 소설가 폴린 레아지(Pauline Reach) 원작으로서,
세계 32개국에 출판된 베스트셀러이자 SM의 경전쯤으로 여겨지는 소설인데, 우리 나라에서는 "O의 이야기"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그 줄거리는 젊고 아름다운 사진작가 O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스스로 성의 노예가 될 것을 선택하면서, 성적 학대와 새로운 성을 경험하면서 진정한 사랑을 찾아간다는 이야기이다.
오늘 이 절학무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소설의 줄거리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줄거리 정도야 다들 잘 알고 계실테니...
국내에 출시되었던 비디오에 대해 한 마디 하고 싶어서이다.
여기서 말하는 비디오는 5편짜리로서, "르네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상영된 영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제작사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아마 1995년쯤에 3편짜리 시리즈로 출시된 적이 있고, 그 후에 다시 5편짜리 시리즈로 재출시된 것으로 기억된다.
원래 미국에서 10편 짜리로 나온 것을 걸레처럼 가위질해서 1/3분량인 3장짜리로 출시했다가, 양심에 찔렸던지 몇 년 후에 다시 5장짜리로 가위질해서 출시했었다.
그럴바에 차라리 출시하질 말던가.
한심한 비디오 출시 회사와 검열에 참가한 이중인격자들을 저주한다.
누가 봐도 10편 짜리 비디오를 3편으로 가위질하여 편집했다면 그 무모함과 졸렬함에 치를 떨기 마련일 것이다.
그리고 그나마 3편의 비디오도 정상적인 화면을 슬로우모션 위주로 편집하여 시간만 때우는 한심한 편집으로 기억된다.
이 절학무우가 영상물을 심의했던 사람들을 욕하는 것은 단지 그들이 SM물을 터부시한다고 해서는 아니다.
진정으로 올바른 성문화나 새로운 성모럴을 정립하고자 한다면 성인물을 무작정 막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어린애들도 언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성인물, 그걸 가위질을 통해 막으려 하다니....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짓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양성화해서 미성년들의 접근을 사회 제도적으로 막을 방안을 생각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일진대......
아래는 미국에서 출시된 10장짜리 원본 비디오의 자켓 이미지들이다.
요즘도 이렇게 할려나...
이 블로그 검색
2011년 4월 26일 화요일
日本 bondage 略史
퍼가실 분은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일본의 본디지는 일본의 역사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즉 일반적으로 일본 전국시대(戰國時代)와 에도 막부 시기의 형벌에 관한 그림들이 일본 본디지의 원류로 보고 있다.
일본 전국시대의 고문 , 예컨데 화형, 신체절단형, 목마형(木馬刑), 참형 등의 형벌들은 잔학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이에 에도막부(江戶幕府:1742년)에 이르러 형법에 근거하여 형벌의 종류를 제한하였는데, 그 속에 여죄수에 대한 새우묶기, 매달기 고문술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현대 본지디의 모티브를 제공하였다.
[일본형벌사(日本刑罰史)]란 책에 따르면 여죄수의 처형은 남성 구경꾼들의 변태성욕을 불러왔다고 한다.
여죄수에게 공개적인 장소에서 온갖 고통을 가했던 역사가 현대 일본 본디지의 주된 주제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여기에다 당시 성행했던 각종 포박술 또한 현대 일본의 본디지 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일본 본디지의 실질적인 기원은 20세기 초반의 伊藤晴雨(이토 세이유:1882~1961)란 인물이다.
그는 풍속고증가로서 고문에 관한 그림이나 결박 그림을 전문으로 그렸으며, 직접 모델을 고용하여 본디지 사진을 찍기도 하였는데, 이는 후에 『責め絵の女 伊藤晴雨写真帖』으로 출판되기도 하였다.
그는 1953년 한 잡지의 논문에서 “나는 1908년부터 긴박(緊縛)에 대해 연구하였는데, 유일하게 얻은 것이라곤 변태성욕자란 낙인 뿐이었다”라고 자신의 심경을 밝힌 적있다.
이로 볼 때 1950년대 만하더라도 본디지가 일본 사회에서 비정상적이고 변태적으로 비춰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讀切 Romance』라는 B급 색정소설 잡지에 많은 본디지 사진이나 화보가 실렸는데, 이 잡지의 편집자인 上田青柿郎은 伊藤晴雨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고 자술하고 있다.
이들 사진들은 후에 『奇譚俱樂部』,『裏窗』등의 SM잡지가 생기는데 큰 역할하였다.
이로볼 때 伊藤晴雨는 일본 SM의 직접적인 효시라고 할 수 있다.
『裏窗』은 1955년에 탄생하였는데, 처음에는 소설만을 연재하다가 대략 1960년에 SM잡지로 변모하였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奇譚俱樂部』의 전임 편집자인 飯田豐一의 노력 때문이다.
그 는 후에 가장 주된 투고자가 되었고, 승사(繩師)인 濡木痴夢男과 함께 70~80년대 SM잡지의 황금기(예를 들면 《SM Collector》、《SM Select》、《SM Kitan》、《SM Mania》、《SM Fan》、《SM Sniper》、《SM King》등)를 열었으며, SM의 영역을 영상물인 비디오로 넓혔다.
각 SM 잡지의 특성에 따라 본디지의 예술적 표현에 미묘한 차이가 있었는데, 이를 간단하게 설명하긴 어렵다.
단 이들 잡지의 공통점은 모두 여성의 주제였다는 점이다. 일본의 본디지에는 두 가지 조류가 있다.
즉 미학적인 것을 중시하는 것과 경박하면서도 색정적인 것이다.
주목할 것은 団鬼六이 소설 『花與蛇(꽃과 뱀)』을 쓴 후 여성의 성기를 부각시키기 시작하였으며, 이 시기로부터 진동기나 관장(灌腸) 등이 본디지에 등장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현재 일본의 본디지는 여성의 성기와 에널, 음부(陰部) 등 수치스런 부위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전통적인 본디지에서는 없었던 부분이다.
이처럼 현대 일본의 본디지는 성행위의 전주곡인 전희의 하나로 변질되어 미학적인 것을 중시하지 않게 되었는데, 이는 진정한 본디지 예술이 아니라 할 수 있다.
★ 전후 일본 본디지에서는 John Willie 등을 필두로 하는 서구 본디지의 영향을 받아 라텍스 혹은 가죽을 소재로 한 아래와 같은 형식의 본디지가 유행하기도 하였다.
결론적으로 일본의 본디지는 그 기원을 에도시대로 보기도 하는데, 결국 현대 본디지의 원형은 伊藤晴雨(이토 세이유)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지금은 갈수록 일본의 전통적인 본디지를 고수하기 보다는 서양적 현대적인 아이템을 많이 첨가하여 볼거리 위주로 나가는 경향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세월이 흘러 후배들이 우리 나라의 본디지 역사에 대해서도 논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해 본다.
서구 fetish & Bondage의 원조
퍼가실 분은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서구 fetish & Bondage의 원조는 과연 누굴까?
바로 John willie이다.
본명은 John Alexander Scott Coutts로서, 싱가포르에서 태어나고 영국에서 자랐다.
그후 미국 뉴욕에서 1946년부터 1959년까지 페티쉬 & 본디지 잡지인 "Bizarre"를 간행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1962년 사망 후 그의 진가가 알려지기 시작하여, 지금은 서구 본디지 & 페티쉬 컨셉의 선구자로 불리고 있다.
그의 컨셉은 사후에도 사장되지 않고 Eric Stanton이나 Robert Bishop 등에 의해 이어져 왔으며, 지금도 서양 본디지에 그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여러분들에게 잘 알려진 Bondagecafe.com이다.
아래에서 이미지를 곁들여 간단히 소개할까 한다.
John willie의 이 상상은 상상은 아래와 같이 Irving Klaw에 의해 현실에서 재현되었고,
그 후 Robert Bishop에게 이어졌다.(아래의 이미지 참조)
그리고 다시 지금의 Jim Weathers에 의해서 Bondagecafe에서 아래와 같이 되살아났다.
유행이 돌고 돌듯이, 변화의 극에 달하면 다시 회귀하는 법인가보다.
아래를 보시라!
(제일 위쪽 흑백 카툰은 John willie의 작품)
본디지 환타지아를 꿈꾸던 John willie의 영혼은 이렇게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다.
본디지의 원조라고 자처하는 일본의 경우도 John willie의 영향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일본 본디지계의 대가인 濡木痴夢男조차도 한때 John willie의 영향을 받았다고 토로했을 정도니까...
1960년대 중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일본 SM계에 광풍처럼 불었던 leather 컨셉은 바로 John willie 때문이었다고 한다.
당시 일본의 컨셉을 그린 이미지들
어떤 분야건 선구자가 꼭 있어야 하나보다.
피드 구독하기:
글 (At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