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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31일 금요일

마블 코믹스의 전설과 함께한 Fetish Art의 선구자 Eric Stanton

John Willie, Robert Bishop과 함께 미국의 본디지 & 페티시 아트의 선구자로 불리는 Eric Stanton에 대해 조명해보고자 한다.

 

에릭 스탠톤(Eric Stanton: 1926~1999)New York 출신으로 본명은 Ernest Stanzoni Jr이며, 미국의 언더그라운드 만화가이자 페티시 아트의 선구자이다.

 

에릭 스탠톤은 어빙 클로(Irving Klaw)*의 본디지 아티스트 일원으로서 경력을 시작했지만, 그의 후기 작품 대부분은 성() 역할 전환 및 여성 우월주의 시나리오를 그렸다. 1940년대 후반부터 어빙 클로로부터 의뢰받은 그의 본디지 판타지 시리즈는 언더그라운드에서 유명세를 탔다.

어빙 클로우(Irving Klaw : 1910~1966)는 미국의 페티시 아트, 핀업 사진 및 영화 판매업자이다. 그는 Bettie Page, June King, Joan Rydell, ackie Miller 등과 함께 페티시 아트을 제작하였고, Eric Stanton, Gene Bilbrew 등 많은 삽화가들을 후원하였으며, Charles GuyetteJohn Willie의 유산을 간접적으로 홍보했다. 


에릭 스탠톤은 또한 선구적인 언더그러운드 페티시 아트 출판가인 레너드 버트먼(Leonard Burtman : Exotique** Selbee 메거진 발행인), 악명 높은 타임스퀘어 출판사의 에드워드 미시킨(Edward Mishkin), 페이퍼백 출판사의 스탠리 말킨(Stanley Malkin)과 함께 일했다. 그는 또한 10년간 마블 코믹스(Marvel Comics)의 레전드인 스티브 딧코(Steve Ditko)와 함께 작업하는 스튜디오를 공유하기도 했다.

** 엑소티크(Exotique) : 레너드 버트먼(Leonard Burtman)1955년부터 1959년까지 뉴욕에서 Burmel Publishing Company를 통해 발간한 페티시 전문 잡지로서, Femdom 주제의 사진과 아트들은 존 월리(John Willie)가 제작한 최초의 페티시 잡지인 Bizarre(1946-1959)의 뒤를 이은 것으로 인정된다. Exotique는 페티시 패션과 여성 지배적인 본디지 환타지에 치중하였다.

  

에릭 스탠톤(Eric Stanton)


스티브 딧코(Steve Ditko)

 

1960년대의 소프트코어 시대를 지나 그의 예술은 더욱 퇴행적이 되었다. 스탠톤은 1970년대에 스탠튼 아카이브(Stanton Archives)”라는 이름의 우편주문 사업을 만들면서 자신의 작품을 팬들에게 직접 판매하였고, 1982년부터 팬들에게서 영감을 받은 책인 스탠툰스(Stantoons)”를 발행하여 사망할 때까지 100권 이상을 제작했다. 그는 일생 동안 수많은 언더그라운드 출판물과 Leg ShowLeg World 같은 성인잡지에 기여했으며, 1984년 뉴욕시 나이트클럽 댄세테리아(Danceteria)에서 생애 유일의 미술 전시회를 가졌는데, 아티스트인 뱅크시(Banksy), 앨런 존스(Allen Jones), 마돈나(Madonna)는 그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에릭 스탠튼은 뉴욕 브루클린에서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2차 세계대전 동안 미 해군에 복무하면서 입은 머리 부상으로 부분적으로 색맹이 되었다. 이후 그는 스파키 와츠(Sparky Watts)나 베이브(Babe)에서 부디 로저스(Boody Rogers)***의 미술 조수로 활동하며 배경 미술과 줄거리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여자 레슬링과 여성 격투기 만화를 선호했지만, 핀업(pin up)과 영화 스틸을 판매하던 어빙 클로(Irving Klaw)에 의해 본디지 판타지 챕터 시리즈를 제작하도록 의뢰받았는데, 이는 그의 페티쉬 아트 경력의 시작이다.

*** 부디 로저스(Boody Rogers : 1904~1996) : 본명은 Gordon G. Rogers로서 오클라호마주 호바트 출신이며, 슈퍼히어로 패러디물인 스파키 와츠(Sparky Watts)를 만든 미국의 만화가이다.


IRVING KLAW [왼쪽]와 핀업의 여왕 BETTIE PAGE [오른쪽]

 

에릭 스탠톤은 1950년대 초반 일러스트레이터 학교에 입학하여 만화가인 제리 로빈슨(Jerry Robinson)**** 아래에서 공부하였는데, 반 친구 중의 한 사람이 미래의 스파이더맨(Spider Man)과 닥터 스트레인지(Dr. Strange)의 공동 창작자인 스티브 딧코(Steve Ditko)였다. 그는 또 다른 한 친구인 진 빌브루(Gene Bilbrew)로부터 어빙 클로(Irving Klaw)를 소개받았다. 1958년부터 1968년까지 스탠톤은 유명한 만화가 스티브 딧코와 뉴욕의 Eighth Avenue 43번가에 있는 맨해튼 스튜디오(Manhattan studio)를 공유했는데, 여러 해 동안 그 둘은 페티시 만화에 협력하였다.

**** 제리 로빈슨(Jerry Robinson) : 1922~2011. 미국의 만화가로서 본명은 셰릴 데이비드 로빈슨(Sherrill David Robinson이며, 1940년대 DC 코믹스의 배트맨 시리즈의 작가이자 RobinJoker의 창작자이다. 


스티브 딧코의 전기 작가인 블레이크 벨(Blake Bell)은 출처를 인용하지 않은채 과거에 주로 스폿인킹(spot inking) 작업을 하며, 서로의 작품을 살짝 봐주었다고 말했지만, 스탠톤의 작품에 손댄 적 없다고 부인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스탠톤의 책 도입부에는 "에릭 스탠톤이 그의 그림을 인도 잉크로 그렸고, 스티브 딧코가 채색했다"고 쓰여 있다.

 

스탠톤은 1988년 그레그 틱스턴(Greg Theakston)과의 인터뷰에서 스파이더맨에 대한 그의 기여가 "거의 전무하다"고 생각했지만, 그와 딧코는 "스토리 보드에 함께 작업했고 나는 몇 가지 아이디어를 추가했다.…… 나는 스파이더맨의 손에서 거미줄이 나오는 것을 덧붙인 것 같다."고 하였다.

 

페티시 미술사학자이자 에릭 스탠톤의 전기작가인 리처드 페레스 세베스(Richard Pérez Seves)에 따르면 스탠톤은 딧코와의 우정을 유지하기 위해 스파이더맨에 대한 자신의 역할과 공헌을 의도적으로 과소평가했을 수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스탠톤이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보이지 않은 기여를 했다는 증거가 있다는 점이다.”라고 하였다.

 

1960년대 후반부터 스탠톤은 자신의 작품을 자가출판하여 구독자와 후원자로 구성된 언더그라운드 네트워크에 배포하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1982년에 시작된 그의 옵셋 인쇄물인 Stantoons comic book 시리즈는 1999년에 사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Eric Stanton & History of the Bizarre Underground에 따르면 성인 전용 언더그라운드 출판물의 세계가 마블 코믹스(Marvel Comics)의 탄생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하였다. 이 책에는 수십 년 동안 은밀히 전해 온 모든 추측과 소문, 궁금증이 글과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다

 

에릭 스탠톤은 그는 생계를 위해 시작한 일에 대해 크게 반대했던 종교적 극단주의자와 결혼했다. 스탠튼은 자신이 이 기괴한 언더그라운드 페티시 아트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과 가정이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점차 더 깨닫게 되었다.

 

이에 스탠톤은 그의 스튜디오를 예술학교 친구의 공간으로 옮겼다. 이 친구는 후에 스탠 리(Stan Lee)와 함께 스파이더맨을 공동 창작한 스티브 딧코(Steve Ditko)였다. 스탠톤과 딧코는 서로 마주보고 책상을 정리했고, 다른 친구들이 그들의 직업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흥분했고, 궁지에 몰렸을 때 도움을 주었다. 이로 인해 스탠톤은 스파이더맨을 만들기 위해 조수석에 앉게 되었고, 딧코는 언더그라운드 섹스 페티쉬 아트 적업의 조수석에 앉게 되었다. 스탠튼이 언급한 딧코는 오마르(Omar)라는 이름으로 베티 페이지(Bettie Page)를 세계에 판매한 pin up의 제왕 어빙 클로(Irving Klaw)를 위해 일하기도 했다.

  


   

Eric Stanton []Omar(Steve Ditko) [아래]

 




스탠톤은 찰튼 코믹스(Charlton Comics)“The Many Ghosts of Doctor Graves”()“Dr. Strange”(아래)의 패널로 딧코를 돕는다. [왼쪽 이미지]

딧코는 남자를 그리고 스탠톤은 여자를 그렸다. [오른쪽 이미지]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로큰롤, 십대, 괴물 영화, 비츠(the Beats), MAD 매거진, 그리고 언더그라운드 엽기 페티쉬(bizarre fetish)” 등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954년 무렵이다. 이 모든 것들이 처음 정체성을 가진 구체적 사물이 되는 순간 사회에 대한 위협으로 여겨졌다. 이 정체성은 반란과 자유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은 예술, 문학, 음악, 섹스 등 강박관념을 실험하는 외골수 자유사상가들에 의해 다양한 기간 동안, 일부는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잉태되었다.

 

"구체적 사물들"은 권력자들에게 너무나 위협적이어서 공산주의, 범죄, 마약, 임신 등을 야기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페티쉬 언더그라운드를 활자화한 최초의 표현 형태는 사실 만화였다. 물론 "더티한" 사진도 있었다. 특히 여러 세대의 남성 성욕에 영향을 미친 고전적인 Bettie Page 촬영이 있었다. 하지만 게시된 모든 페티시 자료의 최소 50% 이상이 기이하고 흥미로운 만화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에릭 스탠톤의 작품은 크게 초기와 중기, 그리고 후기 작품으로 구분할 수 있다. 초기의 작품들은 주로 하이힐, 코르셋 등의 페티시적인 요소와 구속적인 요소에 남성에 의한 지배를 결합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중기 작품 이후부터는 여성이 지배하는 형태로 변화하는 것이 특징이며, 이른바 성 역할의 반전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후기의 작품에서는 구속보다는 힘에 의한 여성의 지배가 주류를 이룬다.

 

  

Eric Stanton의 초기 작품들

 


     

Eric Stanton의 중기 작품들

 

 

     

Eric Stanton의 후기 작품들

 

 

에릭 스탠톤은 "남성다움"과 정체성에 대한 탐구, 문화적 고정관념을 지적하는 방법으로 성 역할의 역전을 논하는 실험정신과 남성의 성 역할이 실제로 결정되는 시기에 "영웅적이지 않은" 남성들을 묘사하려는 의지를 가진 원시 페미니스트 성향을 가진 일종의 시대적 반항아였다.

 

만화 평론가인 박석환씨의 말처럼 90년대 중반까지 쉬지 않고 작품활동을 해 온 에릭 스탠톤은 미국 성인 만화팬들에 의해 전설이 되었으며, 그의 작품은 고연령 마니아의 수집대상 1호로 기록되고 있다.


▶ 본 내용은  필자가 직접 여러 자료를 찾아 비교 대조하고 번역하여 작성한 것으로 다른 곳에 게시할 경우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2021년 12월 16일 목요일

Bondage의 형태별 명칭과 이미지 비교

 Bondage의 형태별 명칭과 이미지를 우리말과 일본어, 그리고 영어로 비교해봤습니다.


요즘 국내에서도 본디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 지고 있습니다만, 아직도 일본식 표현을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비록 본디지의 발상지가 일본이라 할지라도 필자의 입장에선 우리 것으로 만들어 가야 뿌리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일본식 표현에 대해 생리적인 거부감도 더해한 것 또한 사실이구요..


각설하고 비록 불완전하지만 아래에 이를 소개드리며, 많은 분들의 좋은 의견도 기대해 봅니다.